‘한 달 5천원으로 살아보기’ ‘노임팩트맨’ 도전한 숭신여고 학생들 | date. 2012.08.26 | view. 47,706 |
어떤 고등학생들이 성격 나빠지려고 작정을 했다. 올 10월과 11월, 경기도 성남의 숭신여자고등학교 2학년 9반 김가연·김수정·김초희·라소현·박현수·심주연·양은영 7명은 ‘한 달 동안 5천원으로 살아보기’를 실천했다. 학습지·문제집·여성용품·통신비는 ‘필수품’으로 분류해 계산에서 제외됐다. ‘환경과 녹색성장’이라는 ‘파일럿’ 과목의 ‘지속 가능 발전’이라는 교육과정이었다.
일주일에 3만원? 어른처럼 쓰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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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간의 프로젝트는 ‘준비기간’과 ‘실행기간’으로 나누었다. 2주는 보통의 생활을 하며 지출을 기록했고, 3주는 총 5천원으로 버텼다. 고등학생들이 써봐야 얼마나 쓰겠어? 고미숙에게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그린비 펴냄)를 쓰라고 종용한 ‘문탁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단다. “아이들이 어른처럼 소비생활을 한다. 이 아이들은 친구 생일 때, 카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카드를 사고, 물건이 지천으로 있어도 또 선물을 사고, 나가서 ‘회식’을 한다.”(책머리에)
첫쨋주와 둘쨋주, 학생들의 지출 규모는 1만~3만원 수준이었다. 주로 먹는 데 쓰였다. 첫쨋주는 2만3900원(소현), 2만600원(초희), 1만5700원(은영), 1만2350원(주연), 3만4300원(가연), 2만3950원(수정). 둘쨋주는 좀 덜 샀지만(먹었지만) 고민은 늘어났다. “TV를 보면서는 절대 과자를 먹으면 안 되겠다. 과자 한 봉지가 비는 동안 먹는 줄도 몰랐다. 아이스크림, 이 맛있는 걸 어떻게 끊어.”(현수) “저번주도 그렇지만 모든 문제는 주말 저녁인 것 같다.”(은영) 현수는 7250원, 은영은 2만3천원을 썼다. 3만4300원을 썼던 가연은 6천원만 썼다. 수정은 더 늘어 2만5450원이었고, 초희는 1만6300원이었다. 주연은 2800원을 썼지만 대형마트에서 “필요하지는 않지만 나중에 쓸 것을 생각해 좀 사왔다”.
드디어 프로젝트 시작. 실행 하루 만에 수정은 이렇게 말한다. “너무 힘든 하루였다. 인내심을 시험한다랄까. 음식의 유혹, 정말 강적이다. 세상에, 내가 기특하다.” 다음날엔 이렇게 평한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좀 나았다. 어제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학생들은 습관 앞에서 주춤해야 했다. 매일 음료수를 마시던 초희는 갈등이 심했다. “아직 3천원이나 남았으니까 음료수 먹을 600원 정도는 써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과 머리가 한바탕하다 결국 일찍 자버렸다.”(10월28일) “늘 마시던 커피 없이 지낸 지가 한 달 가까이 되는데, 역시 자판기 앞만 지나가면 꼭 돌아봐버린다.”(10월29일) 학생들은 음료수와 커피 대신 물을 마셨다. “음료수가 너무 먹고 싶어 700원쯤이야 하고 자판기까지 갔다. 옆에 버려진 캔을 보고 맘을 고쳐먹고 정수기로 갔다.”(소현) 수정은 “아름다운 물통을 보며 금욕주의를 실행했다.”(10월25일) 은영은 학원에서 먹을 밥을 도시락으로 들고 다녔다. “도시락 반찬은 소시지, 무생채, 고추장볶음. 김치 냄새가 조금 난감했지만 그래도 맛있게 냠냠했다.”(10월30일) 은영은 친구들의 유혹에도 ‘31데이’에 아이스크림 체인점에 가지 않았고, 수정은 교통비가 없어 걸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났다. 학원이 예상보다 일찍 끝나서 밤 11시에 차를 타게 된 것. (제 시간에 끝나면 학원버스를 탄다.) 교통비가 800원인데, 야탑까지밖에 못 갔다. 그래서 집까지 걸어왔다는… 춥다. 손이 얼었어.”(10월28일) 수정은 1천원씩 하던 교회 헌금도 하지 않았다.
머리끈·지우개 줍고, 15층 계단을 오르고
시련이 닥쳤다. 지각이나 복장 위반으로 아침 교문지도에 발각되면 벌칙으로 간식거리를 사야 하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주연은 10월25일 월요일 아침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다. 사탕 ‘마이쮸’ 6통을 벌로 사게 되었다. 10월26일에는 수능 보는 언니들을 위해 반에서 2천원을 걷었다. 프로젝트 실패. 지각을 많이 하던 가연에게도 올 것이 왔다. 프로젝트 5주차 화요일, “헐. 두둥. 지각했다. 지각으로 인한 벌금 3천원.” 실패한 김에 프로젝트 발표에 필요한 물품을 샀다.
학생들은 성격 나쁜 아이로 변했을까? 별로 그렇지 않았다. 수정은 ‘휴지쇼’ 하는 애들을 성격 좋게 말렸다. “(휴지쇼 하는 아이들에게) 당당히 ‘환경을 위해서, 다시 생각해줘!’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냥 실상은 ‘안 하면 안 돼?’라고”(10월29일) 했고, 토요일마다 있는 과자파티에서는 아무것도 준비할 수도 먹을 수도 없는 아이들끼리 신나게 놀았다. “굳이 과자 없이도 잘 놀 수 있는 것 같다.”(11월6일, 주연)
아이들은 교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끈을 “앗싸” 하며 주웠다. 지우개도 발견하면 “안 찾아가면 내 것”이라고 칠판에 적어놓았다. 예전에는 ‘더러워서’ 쓰레기통으로 가던 것들이다. “플러스펜이 공부가 제일 잘돼요. 글자도 예쁘게 써지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용품 매장에서 ‘예쁜 거’ ‘외제’ 등 좋은 볼펜을 사느라고 용돈이 아까운 줄 몰랐던 가연이 말했다.
현수는 말했다. “이제 어느덧 소비하지 않는 생활에도 점차 적응을 해나가는 것 같다. 학교에서 과자 먹는 것도 이제는 다 쓸데없는 소비로 보인다. 친구들에게 과자 먹지 말자며 소비의 영향에 대해 설명해주었더니, 어떤 친구들은 뭐 어떠냐기도 했지만, 수긍해서 먹지 않겠다는 친구도 있어 기분이 좋았다.”(11월4일)
2학년 13반의 학생 6명은 한 달 동안 ‘노임팩트맨’으로 살았다. 노임팩트맨은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첫쨋주는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둘쨋주는 음식물 쓰레기 없애기, 셋쨋주는 전기 사용 줄이기, 넷쨋주는 화학용품 사용 안 하기 순으로 확대해갔다. 둘쨋주에는 지렁이가 든 통을 교실에 갖다놓고 음식물을 넣었다. 셋쨋주 염은지는 15층에 사는 친구의 아파트를 걸어 올라갔다. 프로젝트와 상관없는 친구도 따라 올라갔다. 계속 불평하면서. “뿌듯했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도착하자마자 친구 집에서 30분을 잤다.” 화학약품을 사용 안 하는 주에는, 오물을 분해하는 ‘EM 미생물’로 세탁하고,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다. 청소도 EM 미생물로 했다. 미생물은 “큼큼한, 거름 친 것 같은 냄새”가 났다. 수업에 들어오신 선생님이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은지는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집이 생기면 한번 이렇게 살아봐도 재밌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큼큼한 미생물이 장악한 ‘재밌는’ 교실
‘지속 가능 발전’ 교육과정에는 하루 5ℓ로 2주간 생활하기, 안 입는 옷 재활용해 손수건 만들기, 휴지 사용 줄이기 등 프로젝트팀도 꾸려졌다. 수업을 진행한 김강석 교사는 말한다. “시험도 안 보는 과목인데 아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할 줄 몰랐다. 교직 생활 8년 만에 큰 감동을 받았다.” ‘환경과 녹색성장’은 올해 숭신여고를 비롯한 경기도 4개 학교에서 시범교육을 했고 내년에 ‘선택과목’이 된다.
성남=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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